솔직해진다는 것

주간 에세이/L. 서울에 내리는 이슬비

2021. 5. 25.

솔직해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나에게 솔직해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대게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은 자존감이 높고, 자신감이 넘친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 매우 솔직하지 못하다. 내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도 그것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내 자신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쉼없이 달려왔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우울할 때 어떻게 해?”라고 물었을 때, 나는 공부하거나,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사실 이것저것 할 일이 많아지고는 운동은 우선순위의 바닥을 점령하고 있기에, 대부분은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나아지고 다시 열심히 살아가야할 것 같은 느낌이 마구 솟구친다. 난 여기서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울할 때는 왜 우울한지, 어떻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나에게 질문을 던졌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게 내 감정을 벽 깊숙이 묻어두고 할 일이라는 시멘트를 그 위에 발랐다. 하지만 시멘트는 최강 무적이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게 금이 가기 시작했고, 결국 지금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내 감정을 다루는 것에, 나를 아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놀랍게도 최근이다. 20년 동안이나 알지 못했다. 자취를 시작하고, 내 오랜 친구와 자주 영상통화를 했다. 그 친구와 이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친구는 나에게 “내가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참 많구나.”라고 말했다. 나 역시 나에 대해서 그렇게 느꼈다. 내가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참 없노라고. 정확히 아는 게 없다기보다는 내 자신이 그렇게 줏대가 없는 사람인 줄 처음 알았다. 나는 평생 자기 주장이 강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걸 내가 제대로 알고 있고 그걸 매번 충족하면서 살아왔다고 여겼다. 그런데 대학교에 입학한 후, 내 시간이 많아지며 친구들과 자주 이야기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전혀 아니었다는 생각이 매번 들었다. 친구가 “그것보단 저게 낫지 않아?”라며 나름 타당한 근거를 들면, 이내 수용한다. 뭐, 좋게 말하면 타인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고 큰 갈등을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내 의견에 적절한 근거를 가지지 않은 채 주장하는 경우에는 줏대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다.

그나마 다행이라 여길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자각을 하게 되었냐 묻는다면, 단연 대화와 일기 쓰기이라 답할 것이다. 대화는 내 모든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대상과 해야 한다. 한치의 숨김도 있어서는 안 된다. 내 마지막까지 보여줄 수 있는 그런 사람과 해야 진실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자신이 되기도 한다.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겠으나, 가장 추천하는 방법은 일기 쓰기이다. 내 감정을 활자로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기도 하고, 글쓰기는 참 여러 방면에서 많은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 글을 쓰며 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쓰는 과정에서 새로운 해결방안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는 글쓰기로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뭐랄까, 글을 쓴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와 활자가 만나, 마치 새로운 인격체를 형성하는 것 같다. 글을 쓰며 위로 받고, 그러한 글로부터 위로 받는.

솔직담백한 에세이를 읽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최근에 이기주 작가님의 ‘언어의 온도’를 완독하였는데, 그분의 글로부터 참 많은 다독임과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가장 위로 받은 구절을 끝으로 글을 마치려 한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종종 슬픔에 무릎을 꿇는다. 그건 패배를 의미하지 않는다. 잠시 고개를 조아려 내 슬픔을, 내 감정의 민낯을 들여다보는 과정일 터이다.”
– 이기주 ‘언어의 온도’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