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디슨에 도착한 지 5일이 되었다. 이 시점쯤 되면 한 한 달이 지나간 기분일 줄 알았는데, 그냥 일주일을 정직하게 산 느낌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여유가 있었던 걸지도.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아파트는 전기가 잘 들어오고, 와이파이도 연결됐으며, 침대와 매트리스도 내 엉덩이 밑에 잘 있다. 생각보다는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있다. 문제는 요리를 못한다는 건데, 이건 좀 큰 문제다.
미국의 음식에 관해.
이곳의 음식은 대개 짜다. 짜지 말아야 할 것 같은 것들도 짜고, 원래 짠 것들은 더욱 짜다. 전반적으로 맛이 강렬하고 자극적인 편이며, 한국에 있을 때보다 갈증을 더 자주 느낀다. 공기가 건조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그냥 짜다. 밥을 해 먹기가 어려우니 다른 요리를 할 필요가 있다. 신선한 식재료를 취급하는 식자재 마트를 아직 찾지 못했다. 주변을 더 둘러봐야겠다.
룸메에 관해.
룸메가 왔다. 97년 생이니까 나보다 무려 네 살이 더 많은 형이다. 서로 존대를 하고 있어서 아주 어색하다. 좋은 사람 같다. 그래픽카드를 한국에서부터 사들고 와서 컴퓨터를 조립해쓰겠다는 걸 보면 확실히 좋은 사람이 맞다. 매트리스가 아직 없어서 바닥에서 자야 할 사람이다. 뭔가 친구를 집에 초대해놓고 나는 침대에서 자면서 친구는 소파에 재우는 느낌이라 죄의식이 들긴 하지만, 그렇다고 침대를 내어주면 내가 바닥에 나앉아야 한다. 그건 좀…. 빨리 오기를 빌어줄 수밖에. 내일은 접시와 주방용품을 보러 같이 나가야 할 것이다. 가게 이름이 sur la table이다. 프랑스어로 식탁 위에, 뭐 이런 뜻인데 이 땅에서 내가 영어 말고 알아먹을 수 있는 언어가 하나라도 더 있다는 게 고마울 따름. 한국어 간판은 이제 언제쯤 볼 것인가. 심지어 아까 룸메가 도착했을 때 집을 소개해주다가 두꺼비집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한참을 고민했다. 벌써 이렇게 퇴화되다니.
방에 관해.
첫 날 침대와 책상과 행거를 한꺼번에 조립했다. 어깨가 나가는 줄 알았는데, 그다음 날 완전히 나갔다. 2km쯤 떨어진 잡화점에서 뭘 이것저것 사 오다가. 없던 근육까지 시발롬아, 하면서 깨어나는 것 같다. 어제오늘 합쳐서 이케아 랙과 접시 선반 등등을 조립했다. 확실히 방이 정돈되었다. 갓케아. 유튜브에 종종 나오는 그 흰색 이케아 선반이다. 조립하다가 처음으로 욕을 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 나사 구멍 하나가 제대로 주형 되지 않아서 나사가 안 들어가는 거다. 여분도 없어서 힘으로 돌리다가 나사홈이 다 나가버렸다. 그냥 두기로 했다. 침대에 이불과 베개가 생기고, 세제를 사 와서 설거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하나하나 물품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집에 있을 때는 모른다. 하나라도 없으면 생활에 큰 문제가 생긴다. 샤워 커튼이 없으면 샤워를 못 한다! 실제로 샤워 커튼이 배달된 어제까지 샤워를 못 했다. 말이나 되는가. 물론 물 까짓 거 튀라고 하고 샤워를 할 수는 있는데, 건식 화장실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뒷감당이 어떨지 대충 알기 때문에 참았다. 힘들었다. 어제저녁에 겨우 샤워를 했다. 조만간 집에서도 못 했던 목욕이나 할 것이다. 따뜻한 물이 한 큐에 나오는 것은 매우 좋다. 변기 수압은 안 좋다. 직속이 선물해준 라이언 데스크 오거나이저와 이연의 일러스트, 대충 10년쯤 된 오리엔트 시계가 책상 위에 있다. 한국적인 느낌을 주는 유일한 것들이다.
시차 적응.
안 되고 있다가 오늘쯤에야 거의 되었다. 밤에 잠을 진짜 못 자서 코피를 밥먹듯이 흘렸는데 오늘 처음으로 12시 넘어서까지 이렇게 깨 있다. 사람이 옆에 있어서인가. 여하튼.
걱정보다는 잘하고 있다. 기대보다는 약간 못 미친다. 앞으로도 이럴 것이므로 딱히 피드백을 하거나 하진 않겠다. 원래 어떻게 하든지 걱정과 기대 사이에 현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대보다 현실이 좋다면 그건 기회고, 걱정보다 현실이 안 좋다면 그건… 걱정을 덜 한 것이다. 어쨌든. 열심히 살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식자재마트와 요리 실력, 백신. 그렇게 좋아하는 인테리어는 가급적 삼가려고 한다. 유학생에게 살림살이란 미래의 짐덩어리들이다. 룸메가 캐리어를 세 개 들고 온 것을 보고, 하나로 퉁친 나는 정말 짐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점점 늘어날 수 있다. 최대한 가볍고 단출하게, 그러나 먹는 건 풍족하게.
결국 나는 먹으면서 살아남아야 하므로.
주간 에세이/J. 탈고 없는 산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