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난 독후감을 거의 안 쓴다.
요즘 들어 책을 거의 안 읽기도 하지만, 애초에 반의무적으로 독후감을 쓰는 행위가 그닥 좋게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내가 재밌게 읽었으면 그걸로 그만이지 구태여 남들에게 소개해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 주관적 재미를 설명하기 위해선 나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가야만 하는데(지금처럼), 상당히... 귀찮다. 그건 더 이상 독후감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흔한 찬사 대신, 이런 내가 독후감을 썼다는 것만으로 이 책의 대단함을 대체해도 좋을 것 같다.

일단 내용은 둘째치고, 이 책은 트렌디하다. 디자인 말이다. 많은 과학책이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렌디하지 못한(구린) 디자인 때문에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나처럼 과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조차 그런데, 일반인에게는 오죽하겠나. 그들에게 과학책은 어느새 무서운 존재로 자리 잡은 듯하다. 읽기는커녕, 누가 과학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붙임성이 좋다. 우주라는 전체적인 디자인 컨셉에, 글씨체도 그 디자인과 꽤나 조화롭다(물론 이 책은 번역본이라, 원서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과학책,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물리책에 대한 두려움을 독자의 미적 감각을 충족시킴으로써 조금이나마 상쇄하는 것이다. 표지 디자인이 독서에 끼치는 영향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고... 믿겠다. 여기서 재밌는 점은, 왜 인간이 뛰어난 미적 감각을 가지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이 책에 있다. 마치 `더럽게 재미없는 과학책임에도, 당신이 왜 이 책을 집게 되었는가?`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뛰어난 디자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수문장이 당신의 독서로부터 책을 지키고 있다. 바로 `엔트로피`다. 정리를 해도 금방 어질러지는 당신의 방처럼, 엔트로피(무질서도)는 항상 증가한다. 고등학교에서 이런 식으로 엔트로피에 대해 배우긴 했을 텐데, 그닥 좋은 설명이 아니다. 고등학생의 나는 정확한 이해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가고,
<엔트로피>, <코스모스> 등 물리책도 시도해봤지만 몇 장 못 읽고 방 한켠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런 내가 장담하건대, 이 책을 통해서라면 엔트로피를 쉽고(물론 약간의 두통은 요구된다) 재밌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당신이 엔트로피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진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는 물리학자, 과학자들만의 세계가 아닌 당신이 살고 있는 세계, 즉 인간과 문화, 예술, 사회를 포함해서 의식, 믿음, 마음이 작동하며 엔트로피 제 2법칙에 의해 `당신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엔트로피를 증가시키면서 살아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한번이라도 스스로의 존재(삶)에 대한, 혹은 그와 비슷한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면, 이 책이 가져다주는 세상을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이 당신의 사고, 행동, 최종적으로는 삶 그 자체를 바꾸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국, 이 책은 물리학과 철학을 품고있다. 토 나올 것 같은 조합이다! 그러나 저자는 두 내용의 완벽한 조화를 통해 환상적인 코스요리를 대접하고 있다. 물리가 재미없는 이유는 너무 사실적이기 때문이고, 철학은 너무 추상적이여서 재미없다. 그러니 둘을 섞으면, 상당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갖는 철학적 이야기들이 탄생한다. 저자 브라이언 그린은 서핑의 달인이다. 두 주제 속 파도타기는 아슬아슬하지만 완벽한 기술을 보이며 깔끔하게 끝이 난다. 그리고 관중들은 그의 기교를 보며 재미를 느끼고, 끝나면 박수갈채를 보내게 되어있다. 그리고 다음 날 서핑강사는 새 차를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지식수준에 따라 이해가 어려운 단원도 있으니, 물리학이 주로 등장하는 단원과 철학이 메인인 단원에 대한 정보를 읽고, 직접 선택하면 될 것 같다. 필자는 참고로 철학이 훨씬, 많이 재밌었다. 물론 정독이 최고다!
-에피타이저(각 장에 대한 preview)
1장. 영원함의 매력 - 시작과 끝, 그리고 그 너머
(필자에게 가장 지루했던 단원이였다. 내가 인내심이 조금이라도 부족했더라면, 이 글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철학]
6장. 언어와 이야기 - 마음에서 상상으로
7장. 두뇌와 믿음 - 상상에서 신성(神聖)으로
8장. 본능과 창조력 - 신성함에서 숭고함으로
11장. 존재의 고귀함 - 마음, 물질, 그리고 의미
[물리학]
2장. 시간의 언어 - 과거와 미래, 그리고 변화
3장. 기원과 엔트로피 - 창조에서 구조체로
4장. 정보와 생명 - 구조체에서 생명으로
9장. 지속과 무상함 - 숭고함에서 최후의 생각으로
10장. 시간의 황혼 - 양자, 개연성, 그리고 영원
[분류가 애매한 단원]
5장. 입자와 의식 - 생명에서 마음으로 (반반치킨이라 생각하면 될듯 하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좋다. 나도 모든 내용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으며, 딱히 따로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것은, 전체적으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시선과 이야기들을 어렴풋이 이해라도 하는 것이다. 만약 책을 읽는 도중에 당신의 입에서 '순수한 경이로움에서 나오는 감탄'이 나왔다면, 완벽하다. 그걸로 이 책은 본분을 다했다. 이 책도 아마 그걸 원할 것이다.
보다 많은 이가 이 책을 통해 진짜 세상을 보게 되기를 바라며,
주간 에세이/S. 인생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