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글을 쓰지 않는 사람

주간 에세이/S. 인생 실험

2022. 1. 29.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입대 후, 글을 써봤자 그 간격은 몇 개월에 이르렀다.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소개할 때 '블로그 한다.' 혹은 '글을 쓴다.'라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과거에 글을 썼으니 '글을 썼었다.'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그 말은 지금은 글을 쓰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하고 있지 않은 것을 이야기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현재 그 상태에 있지 않은데.

글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미쳐서 하던 음악, 그리고 사진까지도 현재는 잠시 내 손을 떠났다. 이걸 잠시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도 판단이 잘 안 된다. 앞으로 평생 안 하면 잠시가 아닐 텐데, 그래도 마음속으로는 그것들을 여전히 놓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다. 이건 다행이다.

여전히 노을은 좋아한다


딱히 상황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정당화는 딱 질색이다. 난 항상 자기 객관화를 시도한다. 지금 상태는,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상태이다. 이 답답한 네모난 방에 갇힌 채로, 이어폰을 끼고 새벽 공기를 맡으며 운동을 하진 못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그 사실을 난 알고 있다. 언제나 객관적 사실은 중요하다. 스스로에게는 엄격해야 한다. 왜냐면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모두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깐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다. 하기 싫다기보단 다른 것이 더 하고 싶은 상태가 맞겠지만, 뭐 난 언제나 내 변덕을 즐긴다. 이러다가도 언젠가는 하고 싶을 때가 찾아온다. 그때 최선을 다해 즐기면 될 뿐, 억지로 그때를 앞당기진 않는다. 언제나 자연스러움은 중요하다. 난 자연의 일부다. 그것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사실 나름의 계획은 있었다. 졸업 후 대학원 유학을 위한 토플과 GRE 등 영어 공부, 코딩 공부, 논문 분석 등. 그러나 쉽지 않다. 내 의지는 바닥을 치고 있다.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자는 날이 많아지고 있고, 유튜브는 볼 것도 없으면서 새로고침을 자꾸만 하게 된다. 정확한 원인을 꼽기는 힘들지만, 내 상태는 썩 좋지 않다. 다행히도 운동은 계속한다. 신체적 고통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으로 그나마 나의 생존을 증명한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벌써 2월이다. 벚꽃이 곧 있으면 만개한다. 세상의 색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싶다. 내겐 변화가 필요하다.
 

여명은 더 좋아한다. 뭔가 아침형 인간이 된 기분


사람은 그가 하는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생각도 중요하지만 행동은 생각의 결과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들, 결국 과정은 결과를 이끌어낸다. 결과 없는 과정은 무의미하다. 완전히 무의미하진 않지만, 대체로 그런 표현이 적당하다. 한 번의 행동은 엎질러진 물과 같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한 없는 일로 만들 수 없다. 그것을 신중하기 위해 생각이 필요한 것이지, 결국 생각의 목적은 행동이다. 과정의 목적은 결과이다. 내가 글감을 생각했더라도, 그것이 쓰여지지 않는다면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과정 없는 결과는 위험하지만, 결과 없는 과정은 허무한 시간과 에너지만을 소비한다. 그것은 낭비다. 나는 생각을 낭비하고 있었다.

어떠한 행위를 하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이 결정된다. 나는 나 스스로를 음악을 하는, 사진을 찍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를 즐겼다. 그 행위들이 즐거웠고, 나름 가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누군가에게 떳떳하다. 그래 그거다, 떳떳하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내 삶의 즐거움과 가치를 누군가에게 추천할 수 있고, 존경받을 수 있다. 그것이 다는 아니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좋지 않다. 요즘의 삶은 누군가에게 얘기하기 힘들다. 빛나지 않는 별은 밤하늘에 묻힌다. 빛날 수 있는데 빛나지 않는 별은 굳이 별일 필요가 없다. 열심히 살 수 있는 인간이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은, 내게는 적어도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움직이지 않는 인간은 시체다. 그리고 난 네크로필리아가 아니다.

미술관에 가고 싶다. 양질의 예술이 필요하다


어떤 행위를 행함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거리다. 그리고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음은,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이야기다. 내가 어떤 것을 할 수 있고, 어떤 것을 하고 있는 지를 항상 분석해야한다. 그리고 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는 정당한 이유를 댈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한 번의 패배가 쌓인다. 누구나 지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그리고 난 승부욕이 강하다. 끊임없는 경쟁이다.

그래서, 난 다시 글을 쓴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에서 다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 다시 시작, 리셋. 고장 난 노트북에겐 리셋이 필요하다. 또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했지만, 난 내게 일어나는 변화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쓰기 싫은데 억지로 쓰진 않을거다. 그래도 자기모순은 질색이다. 이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며 자기모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기까지 많은 이들의 글이 도움이 됐다. 그리고 이 글은 그들에게 보내는 찬사이며 스스로에게 하는 잔소리다.
항상 감사함을 유지하자. 그리고 다음에도 찾아오기를 약속하자. 좋은 꿈을 꾸고, 맛있는 것을 먹고, 건강하게 살자.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을 낭비하지 말자. 예술을 사랑하고, 내 사람들을 아끼자. 이것들을 잊지 말자.